설교보다 소중한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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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병구 담임목… 작성일15-08-04 12:3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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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한 편의 설교를 작성하는 일은 정신적, 영적인 에너지를 쏟아 붓는 심한
노동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도 때로는 고역입니다. 쉽게 보일 뿐이지 어느 하나도 쉬운
것은 없습니다. 오늘은 어설픈 저의 글 대신에 다른 이의 좋은 글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빛과 사랑] 7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설교보다 소중한 '한 마디'
19세기에 런던에서 가장 유명했던 설교자 알렉산더 맥클라렌 목사님은 어느 주일 그
도시에서 무신론자로 알려진 한 사람이 예배에 참석한 것을 기뻐했다.
예배를 마치자 그는 무신론자에게 4주 동안 기독교 신앙의 주요 교리를 설교하겠다고
말해주었다. 네 번째 주일 예배가 끝난 뒤 무신론자는 예수를 믿겠다고 말했다.
맥클라렌 목사님은 너무 기뻐서 어느 설교에 특히 감동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그 무신론자는 대답했다.
"목사님의 설교는 물론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독교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한 할머니였습니다. 몇 주 전 교회당에서 나가다가 얼굴에
기쁨이 가득 찬 할머니 한 분을 보았는데, 길이 얼어서 걷기가 불편했기 때문에 제가
좀 도와드렸습니다.
그 분이 저를 쳐다보면서 '선생님, 제 구주이신 예수님을 선생님도 아시는군요. 그
분은 제 인생의 전부예요. 선생님도 그분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하셨습니다. 그
할머니의 몇 마디가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평신도의 몇 마디가 4편의 설교보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나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위의 글이 설교 준비를 게으르게 하는 핑게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저를 사랑하는 이들이 제가 훌륭하고 좋은 설교를 하도록 기도하는 일은 좋은 일이며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의 설교나 저의 설교하는 모습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마십시오. 지나친 욕심은 자신과 타인을 피곤하게 만들뿐입니다. 의지하고 바라볼
이는 하나님 뿐입니다.
노동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도 때로는 고역입니다. 쉽게 보일 뿐이지 어느 하나도 쉬운
것은 없습니다. 오늘은 어설픈 저의 글 대신에 다른 이의 좋은 글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빛과 사랑] 7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설교보다 소중한 '한 마디'
19세기에 런던에서 가장 유명했던 설교자 알렉산더 맥클라렌 목사님은 어느 주일 그
도시에서 무신론자로 알려진 한 사람이 예배에 참석한 것을 기뻐했다.
예배를 마치자 그는 무신론자에게 4주 동안 기독교 신앙의 주요 교리를 설교하겠다고
말해주었다. 네 번째 주일 예배가 끝난 뒤 무신론자는 예수를 믿겠다고 말했다.
맥클라렌 목사님은 너무 기뻐서 어느 설교에 특히 감동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그 무신론자는 대답했다.
"목사님의 설교는 물론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독교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한 할머니였습니다. 몇 주 전 교회당에서 나가다가 얼굴에
기쁨이 가득 찬 할머니 한 분을 보았는데, 길이 얼어서 걷기가 불편했기 때문에 제가
좀 도와드렸습니다.
그 분이 저를 쳐다보면서 '선생님, 제 구주이신 예수님을 선생님도 아시는군요. 그
분은 제 인생의 전부예요. 선생님도 그분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하셨습니다. 그
할머니의 몇 마디가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평신도의 몇 마디가 4편의 설교보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나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위의 글이 설교 준비를 게으르게 하는 핑게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저를 사랑하는 이들이 제가 훌륭하고 좋은 설교를 하도록 기도하는 일은 좋은 일이며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의 설교나 저의 설교하는 모습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마십시오. 지나친 욕심은 자신과 타인을 피곤하게 만들뿐입니다. 의지하고 바라볼
이는 하나님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