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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2019-07-14(시기심의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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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7-31 19:08 조회3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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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전통에서 일곱 가지 대죄라는 것이 있습니다. 교만, 시기, 탐욕, 탐식, 분노, 정욕 그리고 나태입니다. 이 일곱 대죄의 목록은 원래 동방 교회의 수도원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죄의 목록이 서방에 전해졌고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정한 이래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이 일곱 가지의 죄들 중에 하나인 시기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시기와 질투는 다른 점들이 있겠지만 오늘은 넓은 의미에서 같은 항목으로 취급해 봅니다. 시기는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발생합니다. 같은 직종의 사람들 사이에 일어납니다. 성경의 몇 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과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신앙과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시기심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벨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심 때문에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그의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편애를 받을 뿐만 아니라 형들 앞에서 이상한 꿈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편애가 시기심을 유발합니다.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꿈이 시기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사울과 사울의 모든 군사들이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 앞에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을 때에 다윗은 용맹한 믿음으로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그 날 이스라엘은 대승을 했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오는 군사들을 환영한 여인들은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칭송했습니다. 그때부터 사울의 마음에는 다윗에 대한 시기심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기심이 미움으로, 미움이 증오로 바뀌어 십 수년 동안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이 나의 불행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시기와 질투는 수많은 문학 작품들의 구성에 기여(?)했습니다. 조선에는 콩쥐와 팥쥐이야기가 있다면, 서양에는 신데렐라얘기가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날아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잠언 14:30). 가인은 평생 저주받은 인생으로 살았고, 요셉의 형들은 평생 불안감 속에 살았습니다. 사울은 결국 저주의 죽음을 당했고 집안이 망했습니다. 항상 비교의식에 시달리는 사람은 시기하고 질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참된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고전13:4). 시기의 눈이 아니라 사랑의 눈으로 이웃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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