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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눈높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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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병구 담임목… 작성일14-08-04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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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3일 동안 참석한 교수 컨퍼런스에서 다룬 주제들이 많이
있지만 한 가지만 언급해봅니다. 주된 주제는 아니었지만 내게 항상 이슈가 된
문제입니다. 그것은 눈높이 교육입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에 교수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교수가 좋은 교수일까요?  학생들이 교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교수는 좋은 교수입니다. 그럼 더 좋은 교수는 어떤 교수일까요?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면 그 교수는 더 좋은 교수입니다.” 교수들이
학생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현학적 (학식이 있음을 자랑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현학적이라는 이 말도 써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역설적인
풍자요 뼈 있는 농담이었습니다. 선생은 학생들의 눈 높이에 맞추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야 합니다. 설교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저의 집 사람에게서 수없이 들은 말이
있다면 설교를 쉽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설교를 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쉽게 설교할 수 있는 것도 능력입니다. 교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설교를 하라는 말에
저는 이렇게 항변했습니다.  “하향 평준화에 촛점을 맞추면 성도들이나 학생들의 실력이
향상되지 못하기 때문에 상향 평준화를 위해 조금 어렵게 설교하고 조금 어려운 내용도
가르쳐야 됩니다.” 저의 이 고집스러운 변명은 눈높이 교육과 눈높이 설교를 부인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어떻게 하면 어려운 내용도 전할 수 있을까에서 오는 고민의
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높이 교육은 교육이나 설교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상배당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와도
관련됩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때에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는 되지 않을까?” 이렇게
먼저 깊히 생각하고 말하면 좀 더 적게 실수할 것이며 덕을 세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신 사건,  즉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사건은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의
눈높이 사건입니다.  “눈높이.” 저에게도 이것은 사역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다시 한번
노력해야 보아야 할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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